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이칸 연락선 (문단 편집) == 역사 == [[홋카이도]] 및 [[도호쿠]] 개발의 최전선으로 1908년 3월 7일에 철도차량을 선적해 [[쓰가루 해협]]을 건너는 페리 기선이 개통한 것이 그 시초. [[아오모리역]]과 [[하코다테역]]이 바다를 향하는 방향으로 건설된 것도 다 이 세이칸 연락선의 인프라 활용을 위해서였다. 태평양 전쟁 기간에도 절찬리 운행하였고, 전후에 설립된 [[일본국유철도]]가 아래에 나올 여러 연락선들과 같이 인수, 영업을 계속했다. 홋카이도 개발 및 관광 열풍을 타고 하루 여러 대의 선박이 철도차량과 승객을 실어서 오갔다. 다만 이 과정에서 [[토야마루 침몰사고]] 같은 대참사도 벌어졌다. 이 토야마루호 사고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악천후시에도 안전한 승객 및 화물 수송을 위해[* 당장 풍랑주의보 뜨는 순간 선박은 동작 그만이다. 현재도 [[울릉도]]에 풍랑주의보 내려서 배가 운행을 못하게 되어 본의 아니게 갇히는 사례가 나온다.] [[세이칸 터널]]의 굴착을 결정, 설계를 거쳐 1971년 착공하였다. 한편, 그 세이칸 터널의 굴착이 시작된 시점에 일본이 고도 경제성장을 하게 되었고, 국민소득 증대에 따라 삿포로 방면의 항공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일본항공]]의 [[보잉 747-100|747SR]]도 이 때 들여왔다. 삿포로 이외에도 오사카나 오키나와, 후쿠오카행에 고정으로 들어갔다.], 세이칸 연락선의 여객 수송 실적은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내려가고 있었다.]] 화물의 경우 1971년에 855만여 톤, 여객은 1973년 498만 5천여명을 수송한 게 최대 실적이었고 그 이후로는 실적이 내려갔다. 1980년대 초반 [[국철재건법]]이 나오고 [[특정지방교통선]]들이 사라지던 시기에는 이용객 수가 연간 200만명 대까지 줄었다. 그래도 화물수요는 꾸준히 있었던 덕분에 여전히 하루 여러 척의 선박을 띄웠고, 승객의 경우는 [[슈퍼 하쿠쵸|하쿠쵸]] 및 [[하츠카리]], [[호쿠토(열차)|호쿠토]], [[오조라(열차)|오조라]], [[소야(열차)|소야]] 등과 연계 운행해서[* 열차 승객에게 선박 좌석을 우선적으로 배정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세이칸 연락선을 끼고 혼슈와 홋카이도를 오가는 승객들은 일반 승차권 승객보다 1일 빠르게, 즉, 운행일 1개월 1일 전부터 좌석을 예매할 수 있었다.] 승객들을 실어 날랐다. 혼슈에서 하쿠쵸나 하츠카리를 타고 [[아오모리역]]에 내린 후 세이칸 연락선으로 환승, [[쓰가루 해협]] 건너 [[하코다테역]]에 내려서는 호쿠토나 오조라 소야 등으로 환승하는 식이었다. 당연히 그 역으로도 가능했다. 그리고 홋카이도 쪽 연계열차들은 [[삿포로역]]을 종점으로 삼지 않고 삿포로를 넘어서 가거나 심지어는 [[김거김|삿포로를 거르고]] [[쿠시로역(홋카이도)|쿠시로역]]이나 [[왓카나이역]] 등으로 바로 달리기도 했다. 1980년 전까지 [[일본국유철도]]는 홋카이도 내에서의 수송보다 [[혼슈]]와 [[홋카이도]]를 오가는 승객 수송에 더 집중했기 때문이고, 세이칸 연락선은 그 중심축이었다. 1980년 10월 1일 다이어 개정[* 쇼와 55년 10월이라서 1963년의 산로쿠토오, 1968년의 욘산토오처럼 고고토오로 불리기도 한다. 일본국유철도 3대 다이어 개정(앞의 둘에 1978년의 고산토오 포함) 보다는 덜하지만 나름 중요도 있는 다이어 개정으로, 홋카이도에서는 이때가 3대 다이어 개정보다 여파가 더 컸다.]을 통해, [[일본국유철도]]는 혼슈와 홋카이도의 연결보다는 홋카이도 내에서의 운행 체계 확립 ~~및 수많은 [[특정지방교통선]] 폐지~~에 치중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 때부터 하코다테에서 연계되는 [[특급(철도)|특급열차]]들은 무조건 삿포로까지만 가게 되었고, 운행 체계도 [[삿포로역]] 중심으로 재확립되었다.[* [[삿포로시|삿포로]]는 광주와 비슷하게 홋카이도 전 지역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이 마련되어 있으며, 자가용으로 출근한다고 해도 도로망이 홋카이도의 가운데에 있는 삿포로에서 홋카이도 각지로 방사형으로 퍼지는 형상이라 삿포로에 살면 홋카이도 어디로 발령이 나도 출근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때문에 홋카이도 각 지역에 직장을 두고 근무하는데 집을 두고 살기에는 생활 인프라가 더욱 훌륭하고 각 지역으로 가는 교통이 편리한 삿포로에 거주하는 사람(주로 공무원, 교사)도 많다. 최소한 전라남도는 면적이 작기라도 하지 북쪽의 대지(北の大地)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면적이 남한 영토의 80% 크기를 자랑하는''' 홋카이도에서 만에 하나 집이 하코다테인데 발령이 쿠시로로 났다던가 집이 키타미인데 발령이 왓카나이로 났다는 등의 사례가 나오면 도저히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말해 도시공학적 모델에서는 교외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 중심부로 출퇴근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삿포로나 광주 같은 곳에서는 [[러시아식 유머|도시 사람들이 시골로 출퇴근한다]]고 보면 된다.] 한편, 일본국유철도가 1987년 4월 1일 민영화가 이뤄졌으나 [[세이칸 터널]]은 1년 차이로 완공이 늦어졌다. 그러나 1988년 3월 13일, [[타이커스 핀들레이|드디어 올 것이 왔다.]] [[세이칸 터널]]이 드디어 개통되면서 80년 역사의 세이칸 항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로 2회의 부활 운행을 거쳐 1988년 9월 19일 서류상으로도 사라졌다. 2021년 현재 일반 자동차 및 승객용 카페리는 여전히 절찬리에 민간 여객선 회사들이 운행하는 중으로, [[홋카이도 신칸센]] 개통 이후로도 저가 패스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홋카이도로 가는 제일 값싼 교통수단[* [[청춘 18 티켓]]으로 [[쓰가루 해협선]]에서 특급열차 자유석을 탈 수 있던 특례 및 [[홋카이도&동일본 패스]]로 약간의 추가요금만 내면 탈 수 있던 [[하마나스(열차)|하마나스]]가 사라지고, [[오쿠츠가루이마베츠역]]과 [[키코나이역]] 구간에 한해서만 [[홋카이도 신칸센]] [[하야부사(신칸센)|하야부사]]를 탑승할 수 있는 데다 [[도난 이사리비 철도]]의 옵션권 구매가 강제되면서, 저가 패스 여행객들이 페리로 몰리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으로 알려져 있다. 2021년 현재 [[JR그룹]]이 직접 운영하는 철도연락선은 [[JR 서일본]]의 [[미야지마 연락선]]이 유일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